[한의신문=주혜지 기자] 본란에서는 한국한의약진흥원이 주최한 ‘제3회 한의약 신제품?신기술 경진대회’에서 영예의 대상을 수상한 양웅모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를 만나 수상 소감 및 ES한약 신기술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Q. 수상 소감은?
경진대회에 훌륭한 한의약 신제품?신기술이 많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대상을 수상하게 돼 영광이다. 길고 지루한 연구를 함께해 준 연구원들과 옆에서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이 계셔서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이런 뜻깊은 자리를 만들어 주신 한국한의약진흥원 관계자들과 보건복지부에 감사하며, 한의약 발전과 세계화를 위해 새로운 기술과 제품이 더욱 많이 선보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구자로서도 경진대회에 나온 다양한 기술들과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좋은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빠르게 기술 개발과 혁신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저희도 끊임없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Q. ‘ES한약’은 어떤 기술인지?
‘ES한약’은 기존의 모든 약재를 한 번에 끓는 물에 넣어 추출하는 방식이 아닌, 약재 개별의 최적 조건으로 추출한 뒤 농축하는 방식의 한약이다.
1980년대 현대적인 탕전기계와 포장기계가 등장하면서 전탕, 복용, 휴대의 편리성으로 한의계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지만, 이후 탕약의 조제는 어떠한 변화나 혁신이 없는 분야였다.
‘ES한약’의 핵심은 전통적인 한의학에서 이미 언급된, 약재별로 최고의 효과를 내기 위한 추출 환경을 보다 세밀하고 과학적으로 접근해 실제로 최적의 추출 환경을 찾아낸 기술이다. 예를 들면 ‘녹용’과 같은 동물성 약재는 오랜 시간 탕전을 해야만 그 효능을 오롯이 발휘할 수 있고, ‘박하’와 같은 방향성 약재는 짧은 시간 추출을 해야만 한다. 이러한 차이는 비단 몇몇 약재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이 아니다. 많은 약재들이 ‘불의 양’과 ‘물의 양’에 따라 추출되는 성분의 차이가 나며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인 탕전법 역시 매우 다양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문화(文火), 무화(武火), 선전(先煎), 후하(後下), 별전(別煎), 포전(包煎) 등의 방식이 그렇다.
즉 다양한 조건에 따라서 개별 약재들의 추출효율이 달라지는데, ‘ES한약’은 오랜 시간 축적된 저희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별 약재를 가장 효율적인 환경에서 추출한 후 혼합하는 방식의 한약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열수 추출에 비해서 탕약 유효성분의 추출률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Q. 주요 특징과 혁신적인 부분은?
‘ES한약’의 주요 특징은 첫째, 유효성분의 극대화다. 20세기 후반 산업계의 천연물 추출은 한약 추출법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현재 산업계의 천연물 추출은 온도, 시간, 용매의 양 등 최적의 추출 조건을 설정하고 1차·2차 추출 및 농축 과정까지 과학적인 공정을 거친다.
‘ES한약’ 역시 약재별로 성분 분석을 통한 최적의 과학적 공정을 통해 추출되며 이러한 점은 한의약의 약점이었던 QC(품질관리)에서도 강점이 될 것이다. 특히 의약품에서는 동일한 처방에서 동일한 효과(관리되는 유효성분을 기반으로 한 추정 효능)를 담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ES한약’은 이러한 점에서 혁신적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추출 후 농축과정을 통해 복용량을 기존 한약 대비 5분의 1로 줄였다. 농축 한약이 최근 한의약계의 트렌드지만, 기존의 보험제제 및 약속 처방에서만 구현됐다. 반면, ‘ES한약’은 개별 약재의 추출 및 농축 과정을 통해 환자별 맞춤 처방도 농축 첩약이 가능함을 확인시켰으며, 보관 및 복용의 편리성이 확보됐다.
셋째, 자동 조제 시스템으로 정확하고 신속하게 조제한다. 약재를 개별 농축한 한약을 한의사의 처방에 따라 조제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농축비에 따라 농축 첩약을 조제해야 하는데, 인력으로 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자동으로 조제할 수 있는 디스펜서(농축첩약 자동 조제 시스템)를 연구개발해 적용했다. 양의약계에서는 전산화 및 자동 시스템이 빠르게 보급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의약계에서도 이러한 혁신을 계속 연구개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Q. 기술을 개발하기까지 어려움이 있었다면?
무엇보다도 데이터를 축적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점이 당연하면서도 막막한 부분이었다. 또한 전통문헌과 논문, 특허 등 선행 문헌을 조사하고 여러 가지 추출조건으로 실험하고 성분 분석해 나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약재별 물성(물리적 특성)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추출온도, 용매의 양과 온도 시간에 따라 성분은 매우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경우는 다반사였고, 특히 몇몇 약재의 경우 추출 조건에 따라 성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실험실의 한의사, 한약사 연구원들도 같은 약재가 추출 조건에 따라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는지 보면서 함께 놀랐던 경우도 많았다. 일반적인 열수추출로는 거의 유효성분이 나오지 않는 약재부터 몇 시간의 차이로 몇 배의 차이가 나는 약재까지 연구가 진행될수록 연구할 대상이 많아졌다. 길고 지루한 연구개발 과정에서 한의학의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식의 선행 연구가 없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기도 했다.
특히 단순 연구가 아닌 상용화를 목표로 다빈도 한약재 160여 종을 선별하고 연구하다 보니 7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약재 하나하나의 좋은 결과를 얻을 때마다 느끼는 보람과 성취감으로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고, 특히 기억에 남는 약재는 ‘인삼’과 ‘복령’이다. 인삼과 복령은 일반적인 열수 추출로는 한계가 있었고, 가루 내어 먹거나 씹어 먹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고민되었던 약재인데, 다양한 연구 설계와 반복 실험을 통해 만족할 만한 추출 결과를 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인삼과 복령이 들어가는 ‘경옥고’의 조제까지도 관심을 가지게 돼 경옥고의 전통 조제 방식을 다양한 조건별로 연구 실험했고, 이를 토대로 전통 방식의 의미를 살리면서 유효성분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제조공정을 확립해 효능 성분이 우수한 ‘ES경옥고’를 상용화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연구가 미래 한의약을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을 탐구해 나갈 예정이다.
Q. ES한약 기술의 한의약 발전을 위한 역할은?
수천년 역사의 한의학은 오랜 기간 검증된 효과를 기반으로 소중한 가치를 지닌 훌륭한 의학이다. 특히 최근의 ‘정밀(맞춤)의학’ 트렌드에 부합하는 비전과 세계화의 가능성을 지닌 매력적인 의학 분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한의 임상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실비, 수가, 정책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한의 의료기술 수준이 현대과학의 교육 세대인 현대인들의 눈높이에 다소 아쉬운 점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성분명을 알아도 환자가 개인적으로 구입할 수 없기에 당당하게 처방전을 공개할 수 있는 양약과 달리, 누구나 쉽게 구입하고 달여 먹을 수 있는 한약이기에 한의사들은 처방전 공개를 꺼렸고, 같은 처방이라도 그 성분 함유에 대해서 누구도 담보할 수 없었기에 양방의 폄하와 국민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하기도 했다.
한약은 한의학 부문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한약의 효과 극대화와 표준화, 정량화는 모든 한의약 산업의 기초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이를 바탕으로 환자들이나 고객들이 접근하기 쉬운 제형으로의 변화를 꾸준히 연구한다면 시장 자체의 성장과 나아가 한의사들의 역할 증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생각한다.
‘ES한약’을 통해 소중한 한의약의 가치를 떳떳하고 당당하게 내세우는 ‘전문 한의약’으로서 향후 새로운 한약 제형 및 신약 개발로도 이어지는 교두보가 될 것으로 기대하며, 전통적인 한의학을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과학화 및 산업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Q. 향후 연구 계획은?
현재 약재의 개별 추출 및 농축에 대한 연구를 고도화해 나가고 있으며, 상용화 단계에서 완성도를 높여 나갈 생각이다.
현재 지방분해약침 ‘리포사’, ES한약 방식의 추출 농축 한약 기반 ‘ES경옥고’를 비롯해 탈모 외용제제 ‘리모정’, 아토피 외용제제 ‘리아토’ 등이 이달 상용화될 예정이다. 앞으로 의약품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ES한약’ 기술을 이용해 신규 제형에 대한 연구 및 상용화를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첩약건보 시범사업과 발맞춰 ‘ES한약’을 통해 환자들에게 한약의 가치를 더 알리고 한의계 첩약 시장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Q. ‘한의약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현재 소속 교실이 10여 년 전 경희대 한의과대학에 신설된 ‘융합한의과학교실’이다. 이후 대한융합한의학회장, 한의디지털융합센터장을 맡게 되며 자의 반 타의 반 ‘융합’이라는 키워드와 관련되게 됐다(웃음). 당시에는 생소했던 ‘융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이유는 내재된 가치가 엄청난 한의학이 발전하기 위해서 타학문과의 융합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의계에 유행했던 EBM(근거중심의학)보다는 ‘개인맞춤의학’이 한의학의 특성을 반영한다고 생각해 진단 및 처방 플랫폼에 대해 고민했었고, ‘정체모를 까만물’이라는 폄하에 근거와 가치를 가진 한약 제형을 만들어야겠다고 고민했던 것 같다.
한의사들도 자율주행자동차를 타고,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한의사들도 음료수에 성분표시가 안돼 있다면 믿지 못한다. 이제 한의학도 현대 기술과 적극적으로 융합하고 현대과학과 현대인들이 원하는 수준을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융합한다면 한의약의 내재된 가치는 한국을 넘어, 또 하나의 한류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Q. 기타 하고 싶은 말은?
한국만이 가진 한의학의 특성이 있고, 그 가치는 분명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이러한 한의약이 과학화?표준화를 넘어 글로벌 기준을 겸비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과 노력이 필요하다. 한의약 혁신 기술을 지원하고, 한의약에 대한 정책적인 뒷받침이 있다면 우리 한의학의 미래는 분명 밝을 것이라 확신한다.
또한 새롭고 혁신적인 의료기술이란 연구?임상의 긴밀한 협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저희는 꾸준히 연구하고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니, 일선에 계신 한의사 회원들도 저희를 알아봐 주시고 많이 사용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 특히 저희는 연구?임상으로의 개발을 하고 있지만 거꾸로 임상에서 좋은 효과를 보고 있는 다양한 치료 방법이나 치료 제제를 실험실에서 논문으로 입증하고 근거를 축적하려는 기획도 준비하고 있다. 관심 있으신 한의사분들은 대한융합한의학회에 가입하셔서 좋은 영감을 서로 나누면 기쁠 것 같다.